
한국에서 새해를 맞아 자정 카운트다운을 하고 있을 때, 이미 새해를 맞이한 나라들이 있습니다.
반대로 우리가 1월 1일 아침을 보내고 있을 때도 아직 12월 31일을 보내고 있는 지역이 있습니다.
지구는 하나인데 어떻게 날짜가 다를 수 있을까요?
그리고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는 나라는 어디일까요?
그 답을 찾으려면 태평양 한가운데를 지나는 아주 특별한 선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국제 날짜 변경선(International Date Line)입니다.
지구에서는 동시에 서로 다른 날짜가 존재한다
지구는 24시간에 한 바퀴 자전합니다.
그래서 지구상의 위치에 따라 태양이 뜨고 지는 시간이 달라지고, 이를 편리하게 구분하기 위해 세계는 여러 시간대를 사용합니다.
한국은 UTC+9를 사용합니다.
영국을 기준으로 하는 UTC보다 9시간 빠르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시간대를 계속 동쪽으로 이동하다 보면 문제가 하나 생깁니다.
어딘가에서는 날짜를 하루 바꿔야 지구 전체의 달력이 맞아떨어집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기준이 국제 날짜 변경선입니다.



날짜 변경선을 넘으면 하루가 바뀐다
국제 날짜 변경선은 대체로 경도 180도 부근의 태평양을 지나갑니다.
하지만 지도를 자세히 보면 자로 그은 것처럼 정확한 직선이 아닙니다.
여러 곳에서 동쪽과 서쪽으로 구불구불 꺾여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만약 날짜 변경선을 무조건 경도 180도에 맞춰 직선으로 그어버린다면 같은 국가나 같은 섬 지역 안에서도 날짜가 달라지는 황당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실제 날짜 변경선은 국가와 섬들의 시간대 선택을 고려해 여러 곳을 피해 지나갑니다.
그리고 이 선을 서쪽 방향으로 넘어가면 날짜를 하루 더하고, 반대로 동쪽 방향으로 넘어가면 날짜를 하루 빼게 됩니다.
비행기나 배를 타고 이곳을 지나면 달력에서 날짜 하나가 갑자기 달라지는 셈입니다.
세계에서 하루를 가장 먼저 시작하는 곳은?
현재 사용되는 표준 시간대 가운데 가장 빠른 시간대는 UTC+14입니다.
대표적인 곳이 태평양의 섬나라 키리바시(Kiribati)에 속한 라인 제도(Line Islands)입니다.
그중에서도 키리티마티(Kiritimati)가 잘 알려져 있습니다.
키리바시 전체가 UTC+14인 것은 아닙니다. 국토가 동서로 매우 넓게 퍼져 있어 여러 시간대를 사용하는데, 동쪽의 라인 제도가 UTC+14를 사용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날짜가 시작될 때 키리티마티는 지구에서 가장 먼저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는 유인 지역 가운데 하나가 됩니다.
새해가 되면 세계 언론에서 태평양 섬나라들의 새해맞이 소식이 먼저 등장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입니다.



그런데 키리바시는 원래부터 이랬을까?
더 재미있는 사실은 키리바시가 원래 지금과 같은 시간 체계를 사용했던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키리바시는 태평양 한가운데 여러 섬이 엄청나게 넓게 흩어져 있는 나라입니다.
과거에는 국제 날짜 변경선이 사실상 키리바시를 가르는 형태가 되면서 같은 나라 안에서 날짜가 달라지는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1995년 키리바시는 날짜 변경선과 관련된 시간 체계를 조정했습니다.
동쪽 섬들의 날짜를 서쪽 지역과 맞추면서 라인 제도에 UTC+14라는 매우 빠른 시간대가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키리바시는 전 세계에서 새해를 가장 먼저 맞이하는 나라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특징은 뜻밖의 기회로 이어집니다.
2000년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곳
1990년대 말 세계적으로 큰 이벤트가 하나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바로 2000년 밀레니엄입니다.
세계 각국은 누가 새로운 천년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지를 두고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UTC+14를 사용하는 키리바시의 라인 제도는 새 천년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장소 가운데 하나가 됐습니다.
키리바시는 이를 관광 홍보에도 적극 활용했습니다.
라인 제도에 있는 캐롤라인섬(Caroline Island)은 새 천년을 맞아 밀레니엄섬(Millennium Island)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시간대 하나가 국가의 관광 홍보 수단까지 된 흥미로운 사례입니다.
그렇다면 하루가 가장 늦게 시작되는 곳은?
반대편도 궁금해집니다.
UTC+14가 가장 빠른 시간대라면 가장 느린 시간대는 UTC-12입니다.
대표적으로 미국령 베이커섬(Baker Island)과 하울랜드섬(Howland Island)이 있습니다.
다만 이 섬들은 일반 주민이 상시 거주하는 곳이 아닙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UTC+14와 UTC-12의 차이는 무려 26시간입니다.
즉 같은 순간에도 지구 한쪽에서는 이미 '내일' 오후가 되었는데 다른 쪽에서는 아직 '어제'를 보내고 있을 수 있습니다.
지구의 하루는 24시간인데 세계 달력을 놓고 보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날짜의 범위가 그보다 더 넓어지는 것입니다.
비행기를 타고 날짜 변경선을 넘으면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날짜 변경선 근처에서 동쪽 방향으로 비행한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날짜 변경선을 통과하면 날짜를 하루 뒤로 돌려야 합니다.
그래서 출발한 날짜와 같은 날짜에 도착하거나, 시각표만 보면 마치 출발하기 전 시간에 도착한 것처럼 보이는 항공편도 가능합니다.
물론 실제로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것은 아닙니다.
시간대를 바꾸면서 시계와 달력의 표시가 달라졌을 뿐입니다.
반대로 서쪽 방향으로 날짜 변경선을 넘으면 날짜를 하루 앞으로 넘깁니다.
장거리 국제선을 자주 이용한다면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현상입니다.
날짜 변경선은 자연법칙이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국제 날짜 변경선은 적도나 자전축처럼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선이 아닙니다.
인간이 세계의 시간과 날짜를 편리하게 관리하기 위해 만든 사회적 기준입니다.
그래서 국가가 필요에 따라 사용하는 시간대를 바꾸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사모아입니다.
사모아는 2011년 경제적으로 밀접한 호주와 뉴질랜드 등과 날짜를 맞추기 위해 시간대를 크게 변경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2011년 12월 30일을 아예 건너뛰었습니다.
12월 29일 다음 날이 12월 31일이 된 것입니다.
사모아 국민들에게는 달력에서 하루가 실제로 사라진 셈입니다.
지구에는 동시에 3개의 날짜가 존재할 수도 있다
이제 가장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시간대가 UTC-12부터 UTC+14까지 존재하기 때문에 특정 순간에는 지구상에서 서로 다른 세 날짜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장 빠른 지역에서는 이미 화요일이 시작됐지만 많은 나라에서는 아직 월요일이고, 가장 느린 지역에서는 여전히 일요일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지구 전체가 같은 '오늘'을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 달력으로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이미 우리의 내일을 살고 있고, 다른 누군가는 아직 우리의 어제를 보내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새해를 맞이하고 싶다면?
그렇다면 세계에서 남들보다 빨리 새해를 맞이하고 싶은 사람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대표적인 장소가 바로 키리바시의 키리티마티입니다.
UTC+14 시간대를 사용하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먼저 새 날짜를 맞이하는 지역 가운데 하나입니다.
반대로 지구상에서 새해가 가장 늦게 끝나는 곳까지 고려하면 같은 '새해맞이'가 세계 전체에서는 24시간보다 훨씬 긴 시간 동안 이어집니다.
매년 1월 1일 전 세계의 새해맞이 장면이 오랜 시간 동안 계속 보도되는 이유도 이것입니다.
시간은 같지만 날짜는 인간이 정한다
지구는 쉬지 않고 일정한 방향으로 자전합니다.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본다면 어디에도 날짜 변경선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생활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지구에 시간대를 나누고 날짜의 경계를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태평양의 작은 섬에서는 새로운 하루가 가장 먼저 시작되고, 지구 반대편에서는 아직 전날이 이어지는 신기한 현상이 나타납니다.
지구에서 가장 먼저 내일을 만나는 곳.
그곳은 거대한 대륙이나 세계적인 도시가 아니라 태평양 한가운데 자리한 작은 섬들입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사용하는 달력과 시계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꽤 흥미로운 세계지리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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